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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신화의 스토리 개발 및 활용에 관한 연구 작성일 : 2012-11-07 11:21

문화산업경영학과 조회수 : 2392
요 약
 
세상에는 많은 이야기가 존재한다. 어릴적 할머니께서 들려주는 이야기, 시나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 광고속에서 나오는 이야기 너무나 많은 이야기속에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현대의 이야기들은 시간과 공간까지도 이야기가 입혀지고 있다. 바야흐로 이야기 시대인 것이다. 세상의 가장 강력한 이야기 힘을 가진 소재가 그리스․로마 신화이다. 타이탄(2003),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2009), 트로이(2000) 등 그리스․로마 신화의 이야기 소재는 다양한 문화콘텐츠에서 활용되고 있고 지속적인 이야기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도 세계 최고의 구비전승신화인 제주신화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리스․로마신화의 성공처럼 다양한 스토리 자원으로의 개발 및 활용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주신화는 지중용출과 해상표착이라는 화소를 통해 신과 인간의 관계,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 등 인문사회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신화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보유하고 있어 스토리 활용한 문화관광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가 가능하다. 이에 본 연구를 통해 제주 신화의 형식과 특징을 알아보고 스토리 활용성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Ⅰ. 서 론
 
본 논문은 우리민족이 보유한 문화원형에 대한 활용성을 논의하는 것으로 특히, 제주 지역을 중심으로 제주 신화에 대해 이해하고 그에 따른 활용 전략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전 세계적으로 이야기가 가장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소재 중의 하나가 그리스․로마 신화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인간이 누릴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졌지만 또한, 사랑․미움․시기․질투 등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유럽사회에서 19세기 중세 시대 이후 시․소설․미술 작품 등에서 수많은 영감(令監)을 제공하였고 지금까지도 대중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다양한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다. 또한, 나이키, 스타벅스, 올림푸스 등 세계적 브랜드들이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브랜드 이미지들로 활용하는 등 파급, 확대 및 재생산되고 있다. 짧은 역사 때문에 이야기 소재가 적은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다른 나라의 이야기들을 재해석하여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제작하여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상에 내놓아 우리의 정서와 전통문화를 알리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대한민국의 대표 이야기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도 신화와 전설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고 있는 대한민국 신화의 보고라 불리우는 곳이 있다. 바로 그곳은 제주도이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전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기록신화(記錄神話)라고 한다면 제주 신화는 세계 최고의 구비전승신화(口碑傳乘神話)라 할 수 있다. 제주도엔 1,800여명의 신들의 신화가 살아 숨쉬고 있다. 지금도 300개가 넘는 신당이 존재하고 있고 대표적인 12개의 본풀이를 중심으로 마을별 본풀이가 이야기되고 있다.
 
 
 
Ⅱ. 제주 신화의 이해
 
1. 신화의 정의 및 유형
신화(神話)는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 종교적 교리 및 의례(儀禮)의 언어적 진술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이 정의가 대체로 적용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신화의 유형으로는 흔히 고조선·신라·고구려·백제 등 이른바 건국신화(建國神話), 각 성씨의 시조신화인 씨족신화(氏族神話)와 여러 마을의 수호신에 관한 마을신화, 그리고 무당사회에 전승된 무속신화(巫俗神話)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네 가지로 유형적 구분이 이루어진 우리나라의 신화는 성격상 차이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미세한 부분에서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의 공통점은 이들이 다같이 창시자 내지 창업주에 관한 이야기, 곧 본풀이 내지 본향풀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고, 둘째의 공통성은 이들 신화가 실제에 있어 전설적인 속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말하자면 한국의 네 가지의 신화들은 창시자의 본풀이인 신화·전설의 복합체라는 공통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나. 신화의 기본적 성격 : 본풀이와 공수
본풀이란 ‘본(本)을 풀다’라는 뜻으로 대체로 신(神)의 근본 내력에 관한 이야기풀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서사무가(敍事巫歌)’ 또는 ‘본생담(本生譚)’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본풀이는 하나의 신이 현재의 면모로서 숭앙받기까지의 과정, 즉 어떤 신격(神格)이 어떤 내력을 지니고 어떤 과정을 밟아서 신격을 향유하게 되었는가에 관한 신 또는 신령(神靈)의 일대기(一代記)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수란 무당의 입을 빌려 신이 인간에게 의사를 전하는 일을 일컫는다. 공수를 하는 신은 대체로 잡귀·잡신을 비롯하여, 조상은 물론 산신·천신 등 우주만물을 지배하는 모든 신이 된다. 그래서 서울지방에서는 무당을 ‘만신(萬神)’이라고도 한다. 공수는 일종의 신탁(神託)이기 때문에 신이 무당의 몸에 내릴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신이 무당을 통해 내림으로써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를 발생시키고 신의 목소리를 대신하면서 커뮤니케이션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 신화의 기본적 성격은 이와 같은 ‘본풀이’에 ‘공수’라는 개념을 삽입시킴으로써 포착할 수 있게 된다. 신화는 기본적으로 신들이 주체가 된 신들의 이야기라는 성격을 가진다. 그러나 그 같은 신화의 속성에서 신들이 가지는 주체성은 신들이 신화 속에서 전개되는 행동의 주체라는 정도에 머무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신화에서 나타나는 신들의 주체성은 신화라는 이야기마저 신들 자신이 서술하고 있다는 데서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다.
한국 무속에서는 신이 직접 불러주거나 일러주는 것을 ‘공수’라고 한다. 신에 접한 무당이 신의 말을 옮겨 놓은 것이 공수이다. 공수 속에 신 스스로가 자신의 내력에 관하여 진술하는 이야기, 곧 본풀이가 포함됨은 말할 나위 없다.
이리하여 공수는 본풀이와 겹쳐지고 여기서 우리나라 신화의 기본적 성격이 결정된다. 무속현장에서는 이야기 서술로서의 풀이와 제액(除厄)이나 축마(逐魔)하는 제의적 행위로서의 풀이가 한데 엉겨 공존하고 있다. 이것은 이야기풀이로서의 신화가 지닌 제의적 기능에 대하여 말해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신 자신이 직접 불러준 것이 공수라면, 그 공수를 인간이 다시 서술한 것이 풀이이다. 공수와 풀이는 서술자의 처지가 달라질 뿐 동일한 실체의 서로 다른 양면에 불과하다. 따라서, 본풀이와 공수의 양면성에서 한국 신화가 지닌 기본 성격의 하나가 부각되게 되는 것이다.
 
다. 제주 신화의 유형
제주 지역에서 전승되는 신화는 크게 문헌 신화와 무속 신화로 나누어진다.
제주 지역에서 전승되는 문헌 신화는 ‘삼성신화’ 신화가 대표되며, 지중용출(地中湧出)과 해상표착(海上漂着)이란 화소(話素)가 결합하여 ‘탐라국 건국 신화’로서 기능하고 있는데 수렵 문화에서 농경문화로 이행하는 단계를 반영하고 있다.
‘삼성신화’는 제주도의 고(高)·양(良 : 뒤의 梁)·부(夫)의 삼성 씨족의 시조신화를 말한다. ≪고려사≫, ≪동국여지승람≫·≪탐라지 耽羅志≫·≪영주지 瀛洲志≫ 등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구전하는 무가나 전설로도 제주도에 전승되고 있다.
위와 같이 다른 성격의 문헌이 존재하지만,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화소의 세부사항까지 고려하여 그 문헌들을 분석하면, ≪고려사≫ 계통과 ≪영주지≫ 계통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고려사≫ 지리지의 기록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태초에 사람이 없더니 세 신인이 한라산 북녘 기슭의 모흥혈(毛興穴)에서 솟아났다. 맏이를 양을나(良乙那), 둘째를 고을나(高乙那), 셋째를 부을나(夫乙那)라 하였다.
세 신인은 사냥을 하여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사는데, 하루는 자줏빛 흙으로 봉하여진 나무함이 동쪽 바닷가에 떠밀려 오는 것을 보고 나아가 이를 열었더니, 그 안에는 돌함과 사자(使者)가 있었다.
돌함을 열어 보니 푸른 옷을 입은 세 처녀와 송아지·망아지, 그리고 오곡의 씨가 있었다. 사자가 말하기를 “나는 일본국 사자인데 우리 임금이 세 딸을 낳으시고 이르시되, 서쪽 바다에 있는 산에 신자(神子) 셋이 태어나시어 나라를 열고자 하나, 배필이 없으시다 하시며 신(臣)에게 명하시어 세 따님을 모시고 가도록 하여 이곳으로 왔사오니, 마땅히 세 따님을 배필로 삼아 대업을 이루소서.”라고 하고 사자는 구름을 타고 떠났다.
세 사람은 나이 차례에 따라 장가들고, 물 좋고 땅이 기름진 곳으로 나아가 활을 쏘아 거처할 땅을 정하였는데, 양을나가 거처한 곳을 제일도(第一都)라 하고, 고을나가 거처한 곳을 제이도라 하였으며, 부을나가 거처한 곳을 제삼도라 하였다. 그런 다음 비로소 오곡의 씨를 뿌리고 소와 말을 기르니 날로 살림이 풍요로워졌다.
여기에서 세 신인이 솟아났다는 모흥혈은 지금의 제주시 이도동에 있는 삼성혈(三姓穴)로서 지금도 구멍 셋이 남아 있으며, 세 신인이 거주하였다는 제일도·제이도·제삼도는 지금의 제주시 일도동·이도동·삼도동으로 제주 시가의 중심지이다.
그리고 세 처녀가 닿은 동쪽 바닷가는 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라고 문헌이나 전설상에 나타나 있다. 온평리에는 세 처녀가 올라올 때 찍혔다는 말 발자국이 바닷가 바위에 남아 있으며, 또한 세 신인이 혼인하였다는 ‘혼인지(婚姻池)’라는 못이 있다. 그리고 세 신인이 거처할 곳을 정할 때 쏜 화살을 맞은 돌이 제주시 화북동에 삼사석(三射石)이라 하여 남아 있다.
 
한편, ≪영주지≫ 계열의 기록은 ≪고려사≫의 기록과 비교하여 이야기의 기본 구조는 같으나 세부적인 사항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 차이점은 세 신인의 차례가 고을나·양을나·부을나의 순서로 되어 있고, 세 처녀가 동해(東海) 벽랑국(碧浪國)의 왕녀이며, 닿은 곳은 조천읍 조천리의 금당(金塘)이고, 세 처녀가 담긴 함은 새알 모양의 옥함이며, 세 신인이 거처한 곳인 고을나는 지금의 제주시 일도동, 양을나는 안덕면의 산방리, 부나는 표선면의 토산리로 되어 있는 점이다.
그리고 여기에 세 신인이 활을 쏘아 용력을 시험하여 상·중·하를 정하고 군·신·민의 서열을 정하여 건국하였다는 기록이 덧붙어 있다.
이 신화에 나타나는 삽화와 화소들은 송당본풀이를 비롯한 제주도 내의 많은 당신화(堂神話)에서도 발견된다. 그 내용은 제주도 내의 어느 곳에서 솟아난 남신(男神)이 수렵 생활을 하다가 동해 용왕국의 막내딸과 혼인하여 농경 생활을 시작하고, 활을 쏘아 좌정할 곳을 정하여 당신이 되고 마을을 수호하게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이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삼성신화는 본래 삼성 씨족의 조상본풀이면서 이들 씨족이 숭앙하던 당신본풀이적 성격의 신화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신화의 삽화들을 외국 신화와 비교하여 보면, 시조가 땅속에서 솟아났다는 지중용출 시조신화(地中湧出始祖神話)는 한반도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오키나와(沖繩)의 미야코 제도(宮古諸島)·야에야마 제도(八重山諸島), 대만(臺灣)의 고사족(高砂族), 타이족, 묘족(苗族) 등에서 발견되며, 시조가 상자 모양의 배를 타고 뭍에 닿았다는 상주표착 시조신화(箱舟漂着 始祖神話) 또는 해상표착 시조신화(海上漂着 始祖神話)는 수로왕비(首露王妃)·탈해왕신화(脫解王神話) 등으로 우리 나라 남해안에서 나타나며, 쓰시마(對馬島)·미야코·고사족·필리핀·베트남(安南) 등 동남아시아에 분포되어 있다.
제주 지역의 무속신화는 무속 의례인 굿에서 심방이 구연하는 ‘본풀이’로 전승되고 있다. 본풀이는 ‘천지왕 본풀이’를 비롯하여 일반신과 당신(堂神), 조상신의 내력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풀이류의 무속 신화는 대체로 문예적 서사구조의 형태로서 남녀의 영웅적 모습이나 사신 신화(蛇神神話), 원혼신화, 지중용출신화, 용궁녀 표착 신화, 치병신 신화 등의 특징을 보인다.
제주 무가 중 ‘배포도업침’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굿하는 공간과 시간의 위치와 유래를 설명하기 위하여 천지혼합 때로 거슬러 올라가 천지개벽, 일월성신의 발생 등 자연현상의 형성과 국토·국가의 형성 등 인문 현상의 과정을 노래하여 내려오는 것을 말한다. 모든 굿의 맨 처음에 시행할 때 초두에 하며 축원무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태초에 천지가 서로 맞붙어 혼합되고 있었는데,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에 하늘의 머리가 자방(子方)으로 열리고, 을축년 을축월 을축일 을축시에 땅의 머리가 축방(丑方)으로 열려 천지는 금이 나 개벽되었다. 이때 하늘에서는 청이슬이 내리고 땅에서는 흑이슬이 솟아나 서로 합수되어 만물이 생겨났는데, 먼저 여러 가지 별이 생기고, 다음에 해와 달이 둘씩이나 생겨났다. 이 때문에 낮에는 더워서 살 수 없고, 밤에는 추워서 살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이때 두 개의 해와 달이 각각 하나로 정리되어 자연의 질서가 잡히게 되었다.
 
그 대목의 이야기가 바로 ‘천지왕 본풀이’이다. 이 본풀이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하늘의 천지왕이 지상에 내려와 총맹부인과 동침을 하고 돌아갔는데, 부인은 아들 형제를 낳았다. 형은 대별왕, 아우는 소별왕이라 이름을 지었다. 형제는 자라나 아버지를 찾아가려고 천지왕이 남기고 간 박씨를 심었다. 그 뒤 박씨는 싹이 나고 자라서 하늘로 줄기가 뻗어 갔다. 형제는 그 박 줄을 타고 아버지를 찾아가니, 천지왕은 형인 대별왕에게 이승을, 아우인 소별왕에게 저승을 차지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승을 탐낸 아우는 수수께끼·꽃 가꾸기 등의 내기를 하여 이기는 자가 이승을 차지하기로 하자는 제안을 하고, 속임수로 이겨서 이승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이승에 오고 보니 해와 달이 둘씩이나 뜨고, 나무와 짐승들이 말을 하고, 귀신과 인간의 구분이 없고, 인간의 불화·역적·도둑·간음 등이 들끓고 있었다. 아우가 형에게 이승의 질서를 바로잡아 달라고 간청하였다. 형은 활로 해와 달을 하나씩 쏘아 없애 하나씩만 남기고, 송피가루를 뿌려 짐승의 혀를 저리게 하여 나무와 짐승들이 말을 못하게 하였으며, 무게를 달아 그 경중으로 귀신과 인간을 구분지어 주었다. 그러나 인간의 사회질서는 바로잡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불화·역적·도둑·간음 등 죄악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다.
 
이 본풀이는 천지분리 신화(天地分離 神話)의 한 형태로 천지 분리, 이승·저승의 분치(分治), 복수일월(複數日月)의 사락(射落), 그 밖에 자연질서의 정리 등의 화소(話素)가 주내용을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화소로 짜여진 이야기는 함경남도의 ‘센(셍)굿’, 서울의 ‘시루말’ 등 서사무가에도 전하고 있다. 또한, 여러 개의 태양이 함께 나타난 것을 없애 하나만 남긴 이야기는 <도솔가 兜率歌> 배경설화로도 기술되어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본풀이는 개벽신화인 천지분리 신화가 장구한 세월에 걸쳐 전승되면서 무속과 결부되어 전국에 분포된 것 중의 하나라고 추정되고 있다.
 
라. 제주 신화의 형식
문헌 신화인 삼성신화는 “태초에 사람이 없더니, 홀연 세 신인이 …….” 하는 식으로 ‘태초’라는 시간을 표시하며 시작된다. 그러나 무속 신화인 ‘본풀이’는 굿을 할 때 심방들에 의해 사설로써 풀이된다. 심방이 기본 제상 앞에 앉아 장구를 치면서, “어느 해 어느 달 며칠, 어느 마을의 누가 무슨 사유로 이 굿을 시작하여, 어떠어떠한 제차를 거쳐 무슨 본풀이의 차례가 되었기로 본풀이를 올립니다.” 하는 내용의 사설에 이어 본풀이, 곧 신화의 내용을 풀이한다.
본풀이의 서두는 대개 “옛날 옛적……” 하는 식으로 시작하여 주인공의 출생과 성장·고행·결연 등 파란 많은 생활을 그려 나가다가 끝에 가서 신으로서의 직능을 차지하여 좌정하는 것으로 결말을 지어 간다. 본풀이는 무엇보다 신으로 좌정하게 되기까지의 내력을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선과 악의 갈등 구조로 내몰다가 결국 선이 승리하는 모습을 보인다. 본풀이의 내용 중에는 양반에 대한 반항이나 풍자도 있고, 계모의 비행을 징계하는 모티프도 있다. 효행이나 정절을 권장하는 내용도 있으며, 숭불(崇佛)·숭무(崇巫) 사상을 고취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연 사상이나 인문 사상들의 기원을 설명하고, 도덕적 규율이나 관습·제의 등의 원인들을 합리화하고 정당화시킨다. 이렇게 하여 이야기가 다 끝나면 “무슨 본풀이를 올렸습니다. 어떻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간곡한 축원으로 넘어간다.
이처럼 “옛날 옛적……” 하고 추상적인 시간으로 시작하는 형식이나 선악의 갈등 구조로써 이야기를 전개하는 모습에서 본풀이를 신화가 아닌 민담에 가까운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본풀이의 주인공이 분명히 신이고, 주제가 신의 직능을 차지하여 신격으로 좌정하는 과정을 풀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화임에 틀림이 없다.
 
마. 제주 신화의 특징
신화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신앙민의 생활양식 규제이다. 구좌읍 김녕리에서 전승되는 ‘궤내기당 본풀이’에는 신이 “돼지 천 마리를 잡아 피 한 점 흘리지 말고 돗제(豚祭, 혹은 돝제)를 하라.”고 지시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지시대로 마을의 각 가호에서는 돼지를 잡아서 ‘돗제’를 지냈다.
‘서귀본향당 본풀이’에서는 남신이 처제의 미모에 반해 본처를 버리고 처제와 도망가서 산다. 그리하여 신앙민들은, 남편은 서귀와 서홍리를 차지하고 처는 동홍리를 차지하여 좌정하게 되었다는 신의 뜻대로 서로 나뉘어 갈등한다. 두 마을 사람들은, 신화 요소에 의거하여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혼인은 커녕 마소의 매매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례들이야말로 제주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본풀이를 신화의 반열에 올리는 중요한 요소가 틀림없다. 신화의 내용을 구연한 다음 축원을 하는 이유는, 신화의 내용을 통해 신의 과거 행적을 명확히 제시하여 신이 그 소원을 들어 줄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유리하게 지배하고 처리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제주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본풀이, 즉 민속 신화는 축원 사항의 성취라는 공리적 기능이 주된 것임을 알게 되며, 아울러 자연 사상과 인문 사상에 대한 지식과 생활에서의 행동 기준을 부여해 주고, 동시에 심미적 쾌락의 기능을 주는 기능도 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Ⅲ. 결 론
 
세계적으로 제주 신화와 비견될 수 있는 지역이 있는데 바로 프랑스의 신화와 전설의 땅이라 불리우는 브르따뉴(Bretagne)지방이 있다. 그 중 브로셀리앙드 숲(forêt de Brocéliande) 은 브르따뉴 지방에서 가장 많은 신화와 전설이 전해내려오는 곳이다. 예수의 잃어버린 성배가 묻혀있다는 곳, 그리고 아더왕(Le Loi Arthur)과 마법사 메를렝(Merlin)의 전설이 남아있는 곳, 그 신화 속의 이야기를 찾아 많은 사람들은 이곳을 방문한다. 아더왕의 전설과 관련된 대부분의 이야기는 영국과 관련이 깊지만 마법사 멀린, 엑스칼리버 등 가장 주요한 부분은 이 곳 브로셀리앙드 숲과 꽁뻬르 성을 반드시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아더왕 신화의 이야기를 찾아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을 찾고 아더왕과 이와 관련 콘텐츠는 이 지역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프랑스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개발되고 있지만 브로셀리앙드 숲이나 꽁뻬르 성과 같은 문화원형이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였다. 문화원형을 훼손하는 인공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최소화하는 대신 아더왕의 이야기를 최대한 부각시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방문 목적을 충족시키는데 노력하였다. 브로셀리앙드 숲(원탁의 기사 이야기의 마법사 메를렝과 요정 비비안(Vivianne)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브르따뉴 숲) 멀린이 아더왕을 지키기 위해 사슴을 타고 나타나 사슴의 뿔을 던졌다는 이야기에 절대 늙지 않는 비비안 샘이라는 설명에 브로셀리앙드 숲은 문화와 역사 그리고 이야기가 왜 중요하는지, 특히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 왜 언급되는지를 알려주는 사례이다.
신화는 태초라는 아득한 옛날에 초자연적 존재에 의해 우주가 만들어지거나 국가의 시원과 관련한 신이(神異)한 인물들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은 대체로 사실이라고 믿어질 뿐만 아니라 신성시 되며, 종교적인 의례에서 사제자들에 의해 음송(吟誦)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음송되는 신화의 내용은 향유민(享有民)의 역사적 사실로 인정되고, 나아가 생활의 규범이 되기도 한다.
또한 신화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에 대한 해석이다. 제주는 태풍의 길목에 있고 농사가 잘 되지 않는 척박한 토지를 가졌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이 신들에게 기원하고 생명을 유지하는데 신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하는 제주 사람들의 생각이 신들에게 의지하면서 전승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제주만의 역사적․인문적 배경을 바탕으로 독특한 자연환경과 차별적인 이야기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제주도는 브로셀리앙 숲과 아더왕의 신화를 뛰어넘을 저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제주도는 프랑스 브르따뉴 지방의 개발 사례와 반대로 하드웨어성의 문화시설 구축에 힘쓰고 있다. 문화시설 구축 및 운영은 제주도를 내방하는 내방객에게 한가지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고 끊임없는 지속력을 갖기에 한계가 있다. 오히려 제주 올레길의 개발 사례처럼 자연환경과 문화원형을 잘 보존하고 이를 기반으로 이야기 자원을 스토리텔링화하여 대중들에게 다양한 목소리로 전달되는 방법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문화시설 또는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신화, 즉 문화원형 자체로는 지속 발전가능한 문화상품이 될 수는 없다. 결국, 신화에 깔려있는 본풀이를 바탕으로 스토리텔러의 공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신화에 담겨있는 이야기가 매개체가 되어 스토리텔러를 통해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만들고 또 다른 이야기를 창조․개발하여 지속적인 문화콘텐츠를 재생산해내야 문화원형의 자체를 보존하고 기존의 문화시설에서 기대할 수 없었던 선순환적 수익 창출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하드웨어성의 개발을 버려할 시점이다. 제주 신화의 소프트파워를 바탕으로 제주만의 새로운 신화 창조를 기대해본다.
 
참 고 문 헌
 
장주근, 『한국의 신화』, 성문당, 1961
양영수, 『세계속의 제주신화』, 보고사, 2011
이석범, 『제주신화』, 황금알, 2005
현용준, 『제주도 신화』, 서문당, 1976
현용준, 『무속신화와 문헌신화』, 집문당, 1992